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비오 카펠로 (문단 편집) === [[AC 밀란]] 1기 === 은퇴 후 TV 해설가를 맡기도 하였던 카펠로는 1987년 AC 밀란의 감독 대행을 맡아 4승 3무 1패의 준수한 성적을 기록하며 [[UEFA컵]] 출전권을 지켜낸다. 하지만 [[베를루스코니]]는 [[파르마 칼초 1913|파르마]]에서 빼 온 [[아리고 사키]]를 감독으로 임명하며 카펠로를 코치로 강등시켰고, 이 후 4년간의 오월동주를 거쳐 1991-92 시즌을 앞두고 정식 감독으로 승격된다. 과거 한국 스포츠 기자들은 카펠로를 '사키의 제자(?)'라고 소개했는데, 둘은 거의 동시대에 코치, 감독 커리어를 시작했다.[* 밀란 감독을 놓고 오랜 기간 암투를 벌여서인지 사키와 카펠로는 견원지간 이상으로 사이가 나쁘다. 단적인 예로 카펠로가 2006-07 시즌 前 레알 마드리드 감독직 루머가 뜨자 2004-05 시즌 레알의 기술 이사를 겸임했던 사키가 극구 반대했을 정도.] [[파일:fabio_capello_ac_milan_in_1994.jpg]] 감독 데뷔 첫 시즌인 1991-92 시즌 '''22승 12무 0패로 데뷔 시즌 [[무패 우승]]'''을 거뒀다. 다음 시즌인 1992-93 시즌도 리그 우승을 하고 챔스까지 진출했지만 프랑스의 [[올랭피크 드 마르세유|마르세유]]에 패배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. 하지만 이 당시 마르세유는 승부 조작으로 리그앙에서 강등당하였다. 1993-94 시즌 역시 리그 우승을 하였고,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결승전까지 진출했다. 결승전 상대는 명장 [[요한 크루이프]]가 이끌던 드림팀 [[FC 바르셀로나]]였다. 요한 크루이프를 비롯한 FC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강력한 자신감을 가졌지만 정작 [[마르셀 드사이]]의 결승골로 카펠로의 AC 밀란에 0:4로 완패를 당하며 오히려 축구 레슨을 받는 망신을 당하게 되고 카펠로는 처음으로 [[UEFA 챔피언스 리그]]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었다. 1994-95 시즌에도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진출하며 3시즌 연속 결승에 진출했지만 [[AFC 아약스|아약스]]에 패배하며 준우승에 머무르고 리그에서도 4위를 기록하며 주춤한 카펠로는 1995-96 시즌 다시 AC 밀란을 세리에 A 우승팀으로 복귀시키는 데 성공했다. 첫 시즌 사키와 비슷하게 442를 사용했고 바레시의 전진으로 볼 배급하고 말디니 등 풀백이 높게 올라가는 등 사키 시절의 공격루트와 비슷하게 공격적으로 운영했고 실제로 득점도 많았다. 카펠로의 수비시스템보다 공격적인 운영을 했고 반바스텐과 굴리트 투톱의 피지컬적 강점을 더 살렸다고 한다. 실제로 카펠로 시절 밀란에서 직선적이고 다이렉트한 플레이가 많으니. 첫시즌은 오히려 공격적으로 운영했다고하고 이후부터 바레시도 전진을 적게하고 사키 시절 공격적인 역할을 맡던 도나도니도 카펠로 하에서 수비적인 역할과 지역방어에 좀 더 치중했다고 한다. 3번째 시즌부터 굴리트 등 스타플레이어가 떠나고 새로운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그 선수들도 4411시스템인 것은 동일했지만 레이카르트 대신 드 사이를 영입하면서 공을 받고 배급하는 것보다 좀 더 수비적인 면에 치중했다. 이렇게 스쿼드가 바뀐 93/94 시즌 34경기 36득점이라는 기록도 나온다. 1996년에 한국에 방한하여 한국 국가대표팀과 친선 경기를 벌인 적이 있다. 결과는 2:3으로 AC 밀란의 패배.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"한국의 3번째 골은 선수 부상으로 걷어낸 볼을 가로채서 넣은 것이다. 월드컵 개최국으로서 신사적인 행동이 아니다"라며 독설을 하기도 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